
계절을 넣는 곳_oil on canvas_54.6x162cm_2022
Jeon, EunSuk / solo exhibition
파초_破草
2023.05.06 - 06.17
서울을 거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은숙 작가의 개인전 [ 파초 l 破草 ]가 어컴퍼니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는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조선후기의 정조正祖(재위 1776∼1800)가 그린 <파초도(芭蕉圖)>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린 작품이다. 파초는 바나나와 같은 속의 식물로 이국적인 정취를 가지고 있어 귀하게 여겨지는 화초 중 하나이지만 정조의 파초도에서는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가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도 <파초>라는 제목으로 파초 키우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수필 <파초>의 내용 역시 취미와 감상을 위해 화초를 키우는 이태준과 금전적 가치를 우선시하고 벌 수 있는 돈을 왜 벌지 않느냐고 답답해하는 옆집 사람 이야기이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쓸모로 기능하는 것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표현해 왔던 전은숙 작가는 파초라는 화려한 식물의 상처와 소박함을 눈여겨보았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파초(芭蕉)라는 식물의 이름을 ‘깨트릴 파(破),
풀 초(草)’라는 ‘부서지고 깨진 풀’이라는 의미의 동음이의어로 변환시키고 이번 개인전의 제목으로 정했다.
완벽하게 제대로 된 것들이 아닌, 깨지고 상처 입은 조금은 부족한, 그러나 더욱 순수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그만의 애정을 이번 전시에서 한껏 표현했다.

새벽.두루미 칵테일_oil on canvas_100x100cm_2019
[전시평글]
전은숙의 회화(繪畫) : 화려한 색, 붓질의 흔적 그리고 숨비소리
미술가 전은숙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이건 꽃이고, 이건 풀이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그러나 언듯 보면 꽃도 풀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물감의 흔적만 보일 뿐이다. 꽃이나 풀은 그저 내면을 들여다 보기위한 매개일 뿐이라는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그는 꽃과 풀을 보며 ‘너의 삶과 나의 삶이 다르지 않구나.’라고 혼잣말을 했을 수도 있다.
작업실 안에서의 전은숙은 어떤 모습일까? 평소 그는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하지 않는다. 주변인들이 그의 작품에 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도 특별히 반응 하지 않는다. ‘너의 눈에 내 그림이 화려하게 보인다면, 그것은 너의 마음이 화려한 것을 보고 싶은 거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창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보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은숙은 색과 붓질로만 표현된 추상성이 돋보이는 페인팅 평면작업을 해왔다. 그가 만들어낸 비정형(非定型) 붓질의 흔적은 그가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그가 본 풍경이나 사물 일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붓질의 흔적 속에 그 자신이 담겨져 있다. 붓질의 흔적 안에서 남모르게 괴로워하며 숨비 소리를 내뱉는 그가 보인다. 그림 속 그는 삶이 힘겹다고 말한다.
삶이 고단한 사람은 밝은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그의 그림은 밝음을 넘어서 화려하기에 그의 삶의 여정이 평탄하지 않았음이 단박에 전달된다. 화려한 색으로 표현된 그의 붓질은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애씀의 흔적이다.
전은숙의 일련의 연작에서 보이는 화려한 색으로 된 붓질의 흔적은 그가 버티어 온 시간에 관한 비망록이며 자서전이다. 치열한 삶 속에서 전은숙은 살아남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지 모른다.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내려놓으려고 힘을 다하는 그가 그림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붓질만이 그에게 삶의 유일한 위안일 것이다.
붓질을 하는 행위를 통해 자아를 찾아가는 미술가의 삶은 구도자의 삶과 닮아 있다. 전은숙은 붓질을 통해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자신을 바로잡는다. 그러면서 지친 마음을 회복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붓질은 마음충전을 위한 붓질이며 동시에 삶의 에너지를 생성하는 붓질일지 모른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마주하며 ‘너도 나처럼 삶이 고단 했구나’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붓질이 내는 숨비소리가 전시 공간을 채울 것이다.
전은숙 작가가 붓질을 하듯 삶 속에서의 복잡한 감정들을 하나 둘 끄집어내다 보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까?
-정명화 / 프로젝트 기획자






[작가노트 ]
근시(近視)의 시선
동백동산을 산책한다.
풀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과 색을 따라 가면서 그 순간 비춰지는 환한 빛을 표현한다.
무덤이 보이고 고목도 눈에 들어온다.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는 고사리들도 무심히 눈에 들어온다.
4월의 제주 오름에서 봄나물을 꺾어 드로잉 재료를 만든다.
윤곽을 따라 그린다. 무게 중심을 찾아 힘주어 표현하며 열매와 줄기 그리고 잎을 따라서 그어본다. 이런 표현 과정을 명사적(名詞的)이라고 이름 짓는다.
눈은 색감을 쫓는다.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에 따라 표현해 나가다 보면 그리고자 한 실재적 대상과 그 주변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가까이 있는 것과 먼 데 있는 것이 색으로 뭉뚱그려진다. 조물락거리는 풍경.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희미해지면서 근시(近視)의 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동사로서의 풍경. 눈이 혀처럼 훑어내린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과 실제 눈앞에 펼쳐진 순간의 간극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그리기를 택했다. 내용도 형식도 그 안에 숨어 있는 개념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름의 정직한 그리기의 방식을 택했다. 남들의 눈에는 옳고 바른 표현법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을 나누는 방법으로는 적당해 보이기도 한다.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선 나의 흔적들이 보잘 것 없이 사소한 것들을 그리는 것일까? 위대한것을 그린다고 그림이 위대해지지도 사소한것을 그린다고 사소한 그림이 되는것은 아니다.
몸으로 부딪혀서 익힌 세상보다 글로 배운 세상이 더 크다. 어쩌면 나만의 순수한 세상으로 되돌아가기 위한 유일한 시작은 몸을 사용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나의 언어를 회복하기위한 첫머리가 그림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동산을 천천히 구석구석걷는다.
_전은숙